[한줄기 눈물, 한줄기 빛]
논둑을 깎다가 잠깐 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네? 방송촬영이요?” 한국농업방송(NBS) <나는 농부다> 프로그램 작가가 사전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다. 아직 풀이 많이 남아 있어서 짧게 얘기하고, 아내에게 사전 인터뷰를 넘겼다. 35도가 넘는 폭염 가운데, 예초기 진동은 어느새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고, 땀은 대공 관정에서 나오는 물처럼 콸콸 쏟아졌다.
비가 오지 않아도 온몸이 젖어있는 그때, 방송국에서 온 연락이 예초기 무게를 조금은 가볍게 해 주었다. 방송 출연도 설렜지만, 그보다도 누군가 뙤약볕 아래 있는 내 존재를 알아봐 주었다는 게 더 기뻤다.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은 지 7년, 포천시 관인면으로 귀농해 모든 걸 쏟아부은 지 3년이다. 꺾어지는 풀 사이로 지난 3년의 귀농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가 아파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일을 하다가 비 올 때 겨우 치과 가서 치료받고 온 최근 일부터, 백일도 안 된 아기를 안고 농사지을 땅 한 평도 없이 무작정 시골로 들어온 날, 땅과 집, 트럭, 영농자금 등 모든 걸 대출로 마련해 마주한 빚의 무서움, 양육지원비를 대출이자와 농업경영비로 사용하는 바람에 정작 아기에게 필요한 분유와 기저귀를 걱정하던 일….
영하 20도를 밑도는 혹한이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겨울마다 목장에서 구슬땀 흘리던 순간들, 공사장이나 다른 농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다시 밭으로 향하던 무거운 발걸음, 새벽에 나와 별빛을 보며 들어갔던 고된 나날들, 하루도 안 걸릴 두둑 작업을 돌부리에 허덕이는 관리기를 달래 가며 5일 만에 끝냈던 일, 이때 홀로 흘린 한 줄기 눈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서러울 틈조차 없었던 시간들, 이제 한 줄기 빛이 비치려나, 여기 포천, 천의 바람 농장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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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출간 예정인 청년생애구술사에 실릴 [한줄기 눈물, 한줄기 빛]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남편 김성택과 삼율리 마을 안효원 형님이 함께 써 내려간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초고를 써서 제게 보여줬을 때 마음이 묵직해졌어요. 저는 전달할 수 없는 남편만이 겪고 느낀 질감과 부피, 무게가 담긴 글이에요.
[나는 농부다317회] 24시간이 모자라 고군분투 귀농일기. 유튜브에 1부, 2부로 영상이 올라와 있어요. 많이 봐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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