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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바람농장

[동아일보] 신학도 출신 농부 “자연과 사람 살리는 농업, 땅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2023-10-04


천의바람농장 김성택 대표

생명역동농법 친환경 고추 재배

올해 5000만원 수익 예상


경기 포천에 있는 천의바람농장의 김성택 대표는 화학 비료, 제초제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득이 되는 농산물을 생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천의바람농장 제공

경기 포천에 있는 천의바람농장의 김성택 대표는 화학 비료, 제초제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득이 되는 농산물을 생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천의바람농장 제공

서울 도심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경기 포천시 관인면 삼율리에 ‘천의바람농장’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고추 농장이 있다. ‘1000개의 바람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농장 주인 김성택 대표(35)의 이력도 독특하다. 그는 신학도 출신 농부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7년 동안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면서 살 것인가의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목회자의 길이 아니어도 답은 있었습니다. 땅을 사랑하는 농부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도시농부학교를 다니고, 유기농업으로 유명한 ‘평화나무농장’에서 연수를 받는 등 3, 4년에 걸쳐 준비해 2021년 ‘천의바람농장’을 설립했다. 90% 대출로 5500㎡(약 1600평)의 땅을 매입했다.



고추를 작물로 택한 것은 비닐하우스 시설이 아닌 노지 상태인 그의 밭에서 키우기 쉬웠기 때문이다. 고춧가루는 한국인의 필수 양념이어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초보 농부가 부닥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제 땅은 유난히 돌이 많았습니다. 온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돌을 골라내느라 전쟁을 벌였습니다. 어떤 날은 털썩 주저앉아 울기도 했습니다. 빌려온 트랙터 바퀴에 철사가 박혀 구멍 난 일, 동력분무기와 관수모터가 고장 나서 혼자 끙끙대며 고친 일, 폭우로 밭이 잠겨 밤새 배수로를 낸 일 등 지금 생각하면 하루도 그냥 지나간 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땅은 고생한 만큼 돌려준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그 돌밭이 결국 힘이 됐습니다. 돌이 많아서 물 빠짐이 좋고, 고추를 심은 적이 없는 땅이라 유기물이 많아서 수확량이 좋았습니다.”



김 대표는 땅과 동식물의 유기적 순환관계를 추구하는 유기농법의 일종인 ‘생명역동농법’에 기초해 농사를 짓고 있다. 제초제, 화학 비료, 화학 농약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키운 고추, 들깨 등은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온라인과 직거래 경로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중학교 교사 출신인 김 대표의 아내는 직접 홈페이지를 꾸미고, 스마트스토어를 개설했다.



천의바람농장에서 생산된 들기름. 천의바람농장 제공


김 대표는 올해 5000만 원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동네 주민들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밭은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이다. 그늘 없는 곳에서 일하는 그를 보고 주민들은 나무 그늘을 만들어줬고, 본인들이 사용하지 않는 작업장을 내줬다. 그의 고춧가루가 세상에 채 나오기도 전에 몇 근씩 선주문을 해주는 주민들도 있었다.



“마을 어른들이 고추 농사 잘 짓는 청년으로 인정해주신 것이어서 뿌듯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지켜보신 분들이니까요.”



처음에 반대하신 부모님은 지금은 든든한 지원군이다.



“목사가 되는 줄 알고 계셨던 부모님은 어느 날 제가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실망하셨습니다. 하지만 저의 뜻이 굳은 걸 알고 허락하셨습니다. 지금은 응원해주고 계십니다.”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데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청년후계농 선정이 큰 도움이 됐다. 창농 초기에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대출금 이자만 100만 원이 나갔다.



“집 근처 목장에서 일하고, 인력사무소에도 나가고,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안정적인 수입이 절실했을 때 청년후계농에 선정돼 월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영농정착금은 최소한의 생활 보장이자 울타리가 되어주었습니다.”



김 대표는 농업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농부다. 매달 포천의 한 보육시설 원생들을 대상으로 농사 체험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김 대표가 먼저 시설에 찾아가 제안했다. 보육원생들은 그의 농장을 찾아 도리깨로 들깨를 털고, 간단한 목공예품을 만드는 체험 교육을 받고 있다. 농장을 찾을 때마다 밝아지는 원생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김 대표에게는 큰 보람이다. 보육시설 아동뿐 아니라 경계성 지능 청소년으로 범위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1600평에서 출발한 김 대표의 농장은 올해부터 임대농지 4300평을 추가해 5900평으로 늘었다. 그의 꿈은 치유농업사가 되는 것. 이를 위해 농협대 치유농업사 2급 양성과정을 수료했다.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농업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복합영농을 하는 농장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논, 밭, 동물이 유기적 순환을 이루고, 이를 통해 사람도 건강해지는 농장입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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