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과 같은 순간, 반짝이는 찰나의 순간
: 두 아이 기르며 ‘생명역동농업’ 농사를 짓는 귀농 3년째 여성농업인 이야기
박현지
현지가 농사를 짓는다고요?
나는 도시 사람이다. 대학에서 만난 스페인어가 좋아 통번역도 하고, 8년을 서울과 경기도에 있는 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지냈다. 주변에 농사짓는 사람은 친인척 포함해 아무도 없다. 그러던 내 인생에 농업이 찾아왔다.
2017년 나는 우리나라 농업 현실을 마주했다. [농촌평균연령 66.3세, 40세 미만 농가 경영주 전체 농민의 1.1%(2016년 기준 통계청 농림어업조사)] 평균수명이 82세니까 20년 후에 이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데 어떡하지. 내가 지어볼까? 생각했다.
“현지가 농사를 짓는다고요? 아이고 참 잘 짓겄네요.”
2021년 어머니에게 내 귀농 소식을 들은 외숙모가 하신 말씀이다. 물론 반어법이다. 나는 고교 시절 뜀틀을 넘다 팔목이 접질리고 앞구르기를 하다 목뼈를 다친 이력이 있다. 작은 체구에 여리여리 그 자체다. 다행히 내겐 엉킨 실타래를 큰 분노 없이 푸는 인내심과 깡이 있다. 이제 와 보니 농부로 사는 데 요긴한 것들이다.
2020년 결혼을 하고 2021년 가을 100일이 채 안 된 아기를 안고 귀농했다.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1,560평 농지를 90% 일반대출로 샀다. 땅을 만나 기뻤다. 그리고 벅찼다. 당장 이자를 준비해야 했다. 금리는 달마다 오르더니 5.5%에 이르렀다. 한 달에 약 백만 원 정도가 이자로 나갔다.
아무것도 없는 빈 땅에서 농사로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무엇을 길러야 할까. 대한민국 필수 양념 채소인 고추. 남편은 노지 고추를 택했다. 문제는 이듬해 봄에야 고추를 심을 테고 가을이 되어야 수입이 생길 테니 약 10개월 동안 농업 소득이 없다는 거다.
남편은 인근 농장이나 목장에 가서 일을 했다. 포천시 관인면은 경기도 최북단이다. 철원과 맞닿아 있어 겨울이 몹시 춥다. 일 년 중 5개월이 겨울이라 할 만큼 겨울이 길기도 하다. 온종일 밖에서 일하느라 칼바람에 터진 손을 연고로 달래가며 남편은 생활비를 벌었다. 또 비닐하우스 짓는 일도 하고 인력사무소를 통해 공사현장도 가며 농외근로와 우리 농사를 병행했다.
농사는 중노동
남편은 귀농하기 전 신학도였다. 학부와 대학원까지 7년 동안 신학을 공부했다. 공부 끝에 내린 결론은 목사 대신 농사였다. 2017년 남편은 광진구 도시농부학교에서 한 평 남짓한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다음 해에는 전국귀농운동본부 자립하는 소농학교에서 자연농법으로 논과 밭 약 천 평 정도를 동기들과 꾸렸다. 이어 2019년 포천 평화나무농장 연수생이 되었다. 한 해 동안 농장에서 숙식하며 김준권, 원혜덕 선생님에게 유기농업과 생명역동농업(Biodynamic Agriculture)을 배웠다. 두 분은 한국 유기농업의 아버지 고(故) 원경선 선생님의 사위와 넷째 딸이다. 평화나무농장은 약 5천5백 평 농지에서 주 작물인 토마토를 비롯해 50여 작물을 심고 길러 가공한다. 소와 산양 같은 가축도 길러 경축 순환이 이뤄진다. 김준권, 원혜덕 선생님은 2005년부터 생명역동농업 실천연구회를 통해 우리나라에 생명역동농업을 보급해 오셨다. 남편과 나는 생명역동농업의 시작과 원리에 공감해 2017년부터 연구회 회원이 되어 실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유기농으로 손꼽히는 생명역동농업은 1924년 인지학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농업강좌에서 시작됐다. 슈타이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땅과 씨앗의 퇴화를 회복할 수 있는 원리를 제시했다. 생명력의 쇠퇴를 막고자 우주의 질서를 땅과 연결하는 것이다. 생명역동농업을 실천하는 농부는 달과 별, 행성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파종 달력(Biodynamic Calendar)'을 따라 농사를 짓는다. 또 자연에서 유래한 재료(소똥/수정/쥐오줌풀/쇠뜨기/서양톱풀/카모마일/쐐기풀/참나무껍질/민들레)로 만든 증폭제(Biodynamic Preparations)를 사용한다.
우리는 ‘세계 최고 농산물로 자연과 사람을 이롭게’ 하고 싶다. 현실은 중노동이다. 일단 손과 예초기로 김매는 일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고추만큼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 또 어디 있을까. 고추는 심고 기르고 수확하는 모든 과정에서 손이 많이 간다.
우리 밭 가장 가까이에 97세 할머니가 사신다. 한여름에도 밭에서 젊은 우리 부부만큼이나 시간을 들여 일하신다. 집에만 있어도 더운 날 땡볕에 나와 이 고된 수고를 평생 해 오신 할머니. 유기농이냐 관행농이냐를 떠나 세상 모든 농부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두 아이를 키우며
여성농업인이 되어보니 일이 시작도 끝도 없다. 뭐든 한다. 내가 하는 일을 나열해 본다. 때때로 밭일한다. 아이들을 먹이고 재운다. 아이들과 논다. 밥을 한다. 집 안 청소를 한다. 농장 서류작업을 한다. 필요한 지원사업에 응모한다. 농장 홈페이지를 만들고 관리한다. 스마트스토어를 개설하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에 농장 소식을 올린다. 일주일에 한 번 인근 초등학교 방과후학교에서 수업한다. 그중 대부분 일을 잠을 쪼개서 한다.
작년 11월 둘째가 태어났다. 나이 마흔. 네 살 아들 도율, 한 살 딸 라율,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얼른 커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그런 내게 작년 12월 도율이가 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엄마의 생일 축하합니다.”
내가 도율이의 사랑하는 엄마라는 사실이 나를 엄마이게 한다. 둘째 라율이가 태어나고 도율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봄 소풍을 갔다.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는데 어찌나 긴장되던지 새벽 4시에 일어났다. 9시 출발인데 시간을 못 맞출까 봐 서둘렀다. 어느 날은 도율이 어린이집 친구들, 엄마들이랑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내게 처음이다. 학부모가 되고 마주하는 일들이 다양하다.
한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랑과 보살핌이 있어야 하는지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 나도 엄마가 있다. 올해 여든하나이신 친정엄마는 우리가 귀농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까이 이사 오셨다. 가끔 농사일도 도와주시고 아이들도 봐주신다. 지난 어버이날 이런 생각을 했다. 엄마는 내 기저귀도 갈아주셨고 내 딸 기저귀도 갈아주시네. 수고가 끊이지 않는 엄마의 삶. 그래도 라율이 덕분에 엄마가 많이 웃으셔서 다행이다.
내일은 더 낫겠지
내일은 더 낫겠지 그런 작은 희망 하나로 사랑할 수 있다면 힘든 1년도 버틸 거야
일어나 앞으로 나가 네가 가는 곳이 길이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 온 너의 용기를 위해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봄여름가을겨울 ‘브라보 마이 라이프’ 중에서)
귀농 초기 남편과 내 주제가라 할 수 있는, 봄여름가을겨울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내일은 더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난 2년 잘 버텼다. 우리 밭에는 돌이 많다. 첫 해 관리기로 이랑을 만들 때였다. 하루면 될 일을 돌이 계속 걸려 사나흘 만에 완성했다. 울기도 했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며 다독이기도 했다. 그늘 하나 없던 밭에 1년 만에 설치한 작은 천막.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무너지거나 날아가기를 몇 차례. 안 해도 될 일을 해야 할 때는 마음이 어렵다.
2022년 1,560평에서 고추와 토종 들깨 농사를 시작했다. 2023년에는 농어촌공사를 통해 논 2,800평을 임대해 오대쌀을 길렀다. 우리 밭 바로 옆 할머니 밭 1,500평을 도지 얻어 들깨를 더 재배했고 겨울에는 호밀을 심었다. 올해 임대 논을 2,500평 더 늘렸다. 몇 주 전 남편이 새로 얻은 논을 트랙터로 갈다가 트랙터가 빠졌다. “쉽게 되는 법이 없어, 변수가 참 많다, 그래도 또 배웠다.” 이 논과 처음 만났으니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그래도 기왕 일이 잘 되길 늘 바라니 안 되는 일을 만나면 잠시 속상하다.
농사는 10년을 배워도 10번 실습에 불과해서 한 번 한 번이 소중하다. 이 마음은 스승이신 평화나무농장 김준권 선생님에게 배웠다. 농사일은 매해 새롭고 험난하다. 경험은 배움으로 남는다. 지난 부족함을 보완해 다음을 맞는다.
그럼에도 농사
농사일은 불확실성이 크다. 수확량을 예측하지만 결과를 담보할 수 없다. 장마철이 되면 가슴을 졸인다. 그럼에도 때가 되면 심는다. “씨앗 심을 때 어떤 생각이 들어?” 언니가 물은 적 있다. 나는 “먹을 생각”이라고 답했다. 들깨 모를 부으며 생들기름 먹을 생각을 한다. 감자를 심으면서 포슬포슬 김이 나는 하지 감자를 떠올린다.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심을 때면 실컷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다.
지금 밭에는 바람결에 호밀이 춤을 춘다. 호밀밭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월동작물은 영하 20도 추위를 통과해 봄에 푸르게 피고 여름에 결실을 맺는다. 섭리가 놀랍다. 우리 부부는 논을 좋아한다. 임대한 논이라 도지를 주고 나면 팔아도 남는 게 많이 없다. 그래도 논을 보면 배가 부르다. 들녘에 심긴 호밀과 벼는 내게 먹는 것 그 이상이다.
나는 농사로 먹고사는 일이 고달프기만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괜찮네.” “자유롭네.” “풍요롭네.” “좋다.” 하면 좋겠다. 이 중노동을 섣불리 권할 수 없지만 그래도 농사짓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좋겠다. 농촌으로 와 우리 곁에 가까이 사는 이웃도 늘면 좋겠다.
농촌에 살며 바라는 것
농사를 지으면서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첫 수확을 했던 2022년 가을 우리 가족은 포천에 있는 아동양육시설을 찾았다. 아이들이 우리 농장에 와 농작업도 같이 해보고 탁 트인 곳에서 바람을 쐬는 상상을 했다. 마침 아동양육시설에서도 가까이에 아이들과 함께 갈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또 아이들이 시설을 떠나 독립한 후에라도 시골의 정서를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었다. 그때부터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우리 농장에 온다. 도리깨로 들깨를 털고, 감자를 심고, 햅쌀밥에 직접 수확한 쌈 채소 넣어 비빔밥을 해 먹고, 역동(반려견 골든리트리버)이랑 놀기도 하면서, 와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간다.
“선생님, 저는 채소 싫어해서 안 먹는데 이건 맛있어요.” 직접 수확한 쌈 채소로 샐러드를 해 먹던 날 한 친구가 말했다. 먼 훗날, 농장에서 지낸 시간이 아이들에게 기억할 만한 일이길 바란다. “그때 농장에서 도리깨로 들깨 털 때 냄새 엄청 고소했지.” “햅쌀이 꿀맛이더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농촌에 살며 긴 호흡으로 다양한 일들을 해보고 싶다.
남편이 올해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편입했다. 작년에는 농협대에서 2급 치유농업사 양성과정을 수료했다. 농사와 공부를 병행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서로 할 일이 많고, 체력이 부치고, 돈이 부족하면 화도 쉽게 난다. 그러니 꼭 시간을 내서 쉬어야 한다. 트럭 타고 밭에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콘 하나씩 들고 기분을 내본다. 도율이 라율이와 눈 맞추고 장난치고 논다. 숨과 같은 순간들. 반짝이는 찰나의 순간을 더 많이 만들어 가야지.
박현지 | 천의바람농장 농부이자 네 살 도율, 한 살 라율 엄마로 ‘생명이 역동’하듯이 지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이 좋아요.